느림속의 여유 두발로
경기둘레길7코스『반구정~율곡습지공원』ㅡ경기평화두리길 본문
비록 곰탕시야지만
그래도 임진강을 뚜렷하게 본모습을 볼수있는곳은 그나마 여기 임진나루터 부근이다
좌측으로는 민통선이 자리잡고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조망하면서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
하트 진행도 ↓
『 경기둘레길 파주 7코스』ㅡ 평화의 바람 맞으며 철마는 달리고 싶다
◈언제:2022/5/22(일요일)
◈소재지: 경기도 파주
◈코스경로: 반구정→임진각역→장산리→화석정→율곡습지공원
◈거리 : 13.50 km
◈시간 :(느림 속의 여유시간)
◈교통: 자가용 자가용 회수 시 택시 이용은 파주 브랜드택시 1577-2030
◈네비: 7코스 시작: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212-3
7코스 종료: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125-1
◈누구랑 : 마누라와
◈날씨 : 흐림
◈시야와 조망 상태: 곰탕시야로 불량
7코스지도 ↓
산길 샘 앱으로 보는 7코스 종합정보 ↓
임진강 반구정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시작한다.
반구정은 황희정승이 고향에 돌아와 말년을 보낸 정자다.
자유로와 나란히 3km 정도 걸으면 임진강역이다.
바람을 가르며 북녘으로 달려갈 날만 기다리는 철마가 멈추어 선 곳이다.
임진강역을 지나 4~5리 정도 계속되는 들판 끝에 장산전망대가 있다.
임진마을을 지나면 임진왜란 때 커다란 횃불 역할을 했다는 화석정이다.
화석정을 내려서면 율곡습지공원이고 걸음도 끝난다. 평화누리길 8코스와 노선이 같다.
둘레길 이야기
날머리 율곡습지공원으로 네비를 맞춘다
여기가 날머리인데 인증쎈터는 안보인다 일단 차량을 주차한다 ↓
공터에 주차한후
올라와 여기서 파주브랜드택시 호출한다
맞은편에는 쎌프장어집이 있다 그 장어집 앞으로 오라하면 오더라
요금은 들머리 반구정까지 1만원 미만으로 나와 큰 부담은 없더만 ↓
아침녘에 습지공원을 담아본다 시야가 곰탕시야지만 학실히 녹음은 힐링이여 조아부러 ↓
택시를 이용해 들머리 반구정으로 이동해서 인증한다 ↓
반구정 입구 주차장이다
날씨 시야가 좋으면 들릴계획이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 냥 패스한다 ↓
반구정은
조선 세종 때 유명한 정승이었던 황희(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친구 삼아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임진강 기슭에 세운 정자로 낙하진과 가깝게 있어 원래는 낙하정이라 불렀다.
반구정은 황희가 죽은 후 조상을 추모하는 전국의 선비들이 유적지로 보호하여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렸다.
그 뒤 이 근처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67년 크게 고쳐 지었다.
건물 규모는 앞면 2칸·옆면 2칸이며,기둥 윗부분과 옆면 등에 꽃무늬 장식을 돌려 붙였다.
인증하고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직진은 지난코스6코스이고 좌측으로 꺽어 진행해야 7코스길이란다 ↓
오늘도 역시 다목적아스팔트 길을 걸어야한다
일요일이라 한가하다 가끔씩 잔차 지나간다 또한 승용차도 지나간다 또한 경운기도 트랙터도 지나간다
울 부부만의 길이 아니란다 ㅎㅎㅎ ↓
근디 지나가는 화물차에서 요게하나 떨어뜨리고 지나가더만
모야 하고 주워보니 무슨 과자 봉지같은디 꼬부랑 글씨가 써져있고 나는
한두개만 가지고 가자 했구만 마눌이 반색을 하면서 이거 쿠키라는 과자인데 커피 마시면서
묵으면 좋다고 기어이 가져가야 한다고 하더라 배낭이 또 곡욕을 치룬다 양이 꽤 되는데 집어넣는다 ↓
집에와서 띁어보니
요런 쿠키과자이고 그럭저럭 먹을만 하더만 ↓
길은 깔끄막 살짝 오르고 올라서니 ↓
쉼터가 나오더만 ↓
뭐
임진강 조망이 쬐끔 감질나게 조망하고 ↓
아직도 아카시아꽃들에서 풍겨나오는 향은 매혹적이고
와~~우 3주째 아카시아향을 맞는구만 아마 담주는 못볼것 같다 ↓
역시 찔래도 더 왕성해진다
유난히 이짝지역은 찔래와 아카시아들이 근 가로수 수준으로 마니 자생하고 있더만 ↓
여기에 장미까지 합세한다 ↓
아주 도도한 붉은장미 완전 꽃길을 걷고있기에 그나마 내머리는 힐링길로 인식한다 ↓
그라고 저거 보는것도 또하나의 힐링이지 ↓
곰탕시야지만
그래도 푸르름이 있고 수로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모두모두 이뽀보여요 ↓
그렇게 약 3킬로쯤 걸어오면 임진각역이 조망되고 ↓
경의선 철로를 건너 ↓
이짝은 문산방향으로 ↓
그라고 저짝은 썰렁한 임진강역이 보이는데
철마는 북쪽으로 더 달리고 싶어도 못가는 안타까움에 그저 거시기 하는구만
주위에 임진각이 있고 냥 지나치지 말고 구경들 하고 가시면 좋을텐데 암튼 ↓
몰랐는데 이길은 의주길이라는 타이틀을 먼저 가졌네요 ↓
반구정에서 3킬로쯤 왔나봅니다 슬슬 아침 먹을 장소를 찾아야하는디
그늘없고 적당한 쉼터도 없고 고민되네그려 ↓
뭐셔
하지감자에도 꽃이 있다는것을 이제야 알았네그려
시골생활 약 20여년 했는데 왜 못본건가 관심이 없었나? 암튼 감자꽃입니다 ↓
굴 다리도 지나고 ↓
굴다리 나와 쉼터가 있고 여그서 밥 묵을까 했지만 햇빚은 없지만 암튼 덮고
거 아담한 지붕이라도 올려놓으면 좋으련만 에~라 니기미 여름 땡볕에 누가 여기서 쉬고가냐
밥묵는것 포기한다 다음장소로 이동하고 ↓
인자 정식 들판으로 진행한다 ↓
들판 논두렁에 완두콩 심어놨어 그꽃은 어렸을때 본것같아 완두콩 꽃이람니다 ↓
농수로에서 흐르는 물만 봐도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
모내기 한참 진행중이고
일손이 그리 부족한것 같구만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에서 현 농촌사정을 알것 같고 ↓
주위는 모내기로 혼잡하지만 방해될껏 없나? 하면서 노심초사 지나간다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
그래도 시방은 기계가 있어 좀 수월하지
옛날에 모내기때는 리아카에 모싣고 최종적으로는 물 뚝뚝 떨어지는 지계에 모내기짊어지고 논두렁사이로
걸어 손으로 일일히 던져서 모내기 할수있도록 하는 것이 논 주인의 일이였는데 ↓
아~~ 들판 한가운데에 그렇게 갈구했던 정자를 발견하고 ↓
늦은 아침을 먹는다 ↓
아이구야 이제 이짓도 못하것다
배낭무게가 장난아녀 이제 개기굽는 것은 사양하고 단순한 도시락으로 대처해야겠다 ↓
밥묵고 술묵고 개기묵고
이제는 당연히 믹스커피지 이게 우리네는 최고인데 젊은이들은 아닌가봐 ↓
이보다 더 편안할수 있을까?
흔들의자에 한참을 들판을 벗삼아 흔들거리고 놀았구만 ↓
들판 한복판의 이정표가 이채롭다 ↓
요놈들 트랙터가 막 쑤시고 갈고 제켜놓고 간끝에 벌레들 잡아먹으려고 난리들이구만 ↓
둘레길은 들판에서 잠시 마을쪽으로 드가는듯 하고 ↓
긍게 요것이 지연하기위해 맹글어놓은 시설같은디
지금 핵 하나면 끝나지 않나? ↓
장산리를 지나갑니다 ↓
덩달아 나도 바빠지고 흥분되는데 농사기질인가? ↓
참 평화롭다 ↓
요고가 여기에 있으면 여기서도 배띄우기가 가능했나
그렇치 않으면 여기에 있을리가 없는디 대개 궁금해지네그려 ↓
지금 농촌은
잠은 캠핑카에 자고 생활공간은 비닐 하우스에서 하고
이런 농촌인구가 늘어나더만 이 집도 전형적인 그런 생활을 하는것 같다 ↓
참 고요한 농촌길 트레킹이다 ↓
방향바꾸고 ↓
정감이 가는 이름이라 담아보고 ↓
이제부터는 고도를 올려야 한다
은근한 땀이 보상으로 이마에 흘러내리더라 ↓
오르고 ↓
끙끙 오르는데 잔차도 끌바하더만 ↓
올라오니 확트인 조망이 보상해주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
에~~라 니기미다 조망이 없는곳이다
근디 분명 조망할 공간이 있을텐데 하고 여기저기 두리번 하다 그럼 다음에 있나 하고 ↓
임도따라 내려가는데 왜이리 개운치가 않지? ↓
한 백미터쯤 내려오다 마눌왈
아까 위에 전망대 뭐라뭐라 쓰여있던데? 하면서 야그하는거야
마눌아 그럼 아까 그위에서 하지? 하면서 핀잔주고 마눌 여기서 쉬게하고
다시 그짝으로 꾸역꾸역 올라갔더니 ↓
에~~라 이걸 못본거야
좀 잘보이는곳에 빨갔게 눈에띄게좀 하지그려 ↓
자동차는 안됩니다 하고
거리는 약 2백50미터 정도 되나 드간다 ↓
가보니 넓은 공터와함께
확트인 공간 전망대가 있더만 ↓
장산전망대란다
조망을 즐기는 젋은이와 ↓
아까 올라오는데 끌바했던 라이더들도 여기서 조망을 즐기고 있구만 ↓
여기서 북쪽의 산하 조망이 가능한데 오늘은 불가다 왜? 곰탕을 뿌려놓았어
마니도 아쉽지만 주위가 넘 좋아 담에 한번 꼭 오고싶은 곳중에 하나로 메모해놓는다 ↓
임진강이 보인다 주위는 민통선이다 ↓
임진강은?
옛날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라 하였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 하였다.
임진강의 길이는 254㎞이고
유역 면적은 8,118㎢로서
북한에서 9번째로 넓은 유역 면적을 갖고 있으며, 한강의 제1지류이다.
전체 유역 면적 중 남한 지역이 약 3,008㎢,
북한지역이 5,108.8㎢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과 평안천(平安川)을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에서 철원·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까지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소형 선박은 안협(安峽)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경기도의 동북단으로 황해도·강원도 등과 인접하며,
동쪽으로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지장봉(地藏峰, 877m)·보개산(寶蓋山, 724m)·향로봉 등 일련의 험준한 산이 있다.
추가령구조곡을 사이에 두고 마식령산맥과 마주하며 그 지구대를 임진강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차탄천(車灘川)·한탄강 등을 합치면서 적성 부근에서 유로를 서남쪽으로 바꾼다.
용암대지 주변의 지형은 화산암류와 편마암 및 변성암 계통이 주를 이룬다.
이들 하천이 합류된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평지를 많이 만들어서
쌀·밀·조·옥수수·고추·잎담배 등의 생산이 많다.
하류 유역에는 파주시·장단군 등이 있으며 한강과 함께 넓은 경기평야를 형성한다.
임진강의 상류는
소나무, 참나무를 기본으로 한 울창한 숲을 이루고있다
그라고 야영팀도 있다
노을질때 어떤그림이 나올까? ↓
그리고 보이는 곶이 초평도란다 ↓
초평도를 풀들섬이라고도 한단다 ↓
섬이란다 임진강안에 떠있는 섬이란다 민통선이라 식생이 잘 보존되고있단다 ↓
저거는
특권이있는 어선이다 몆몆 어업인만 들날들수있는 곶이란다 ↓
조망끝나고 다시 임도따라 ↓
배수관도 중고가 있나 암튼 새것은 아니고 중고처럼 보이는 배수관을 파는 곳인갑다 ↓
임도에서 다시 도로로
여기부터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어 식사가 가능한 지역이다 ↓
장산 전망대를 조망하고 ↓
이주위가 임진나루터인듯 하고 ↓
조망이 좋구만 ↓
강 하류 쪽의 파주시 중심지인 금촌은
토지가 비옥할 뿐 아니라 농산물이 풍부하고
소하천들이 많이 발달하여 있어 소규모의 주운(舟運 : 배로 화물을 나름)도 행하여진다.
문산읍은 경의선의 종점이며 판문점이 있어 남북 분단의 상징이며 군사상의 요충지가 되고 있다.
봉서산(鳳棲山, 216m)은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산정에 산성을 쌓아 역사적으로 알려졌다.
문산 서북쪽의 임진진(臨津鎭)은 수도 서울을 방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연천군 전곡읍에서 중요한 지류인 한탄강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는데,
그 전곡읍 전곡리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임진강 유역의 연천군은
본래 38선 이북이 되어 군정법령 제22호에 따라 38선 이남에 남은 지역을
파주군(현재 파주시)으로 편입시켰다가 1954년 10월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대체로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을 갖추게 되었다.
장단군의 고랑포는 편리한 주운 때문에 물산의 집산지가 되던 곳이다.
장단의 임진강변에 있는 장단석벽(長湍石壁)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하류 쪽에는 동파적벽(東坡赤壁)이 있으며
화장사·심복사·경순왕릉 등의 유적이 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6·25의 격전지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나,
보개산·문인폭(文人瀑)·연취암(蓮醉巖)·용추(龍楸)·문인석(文人石) 등의 명승고적이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강의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판문점과 임진각은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북한은 2009년 9월 6일 사전 예고 없이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에서 물을 방류했다.
당시 무인자동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아서, 임진강에서 야영하거나 낚시하던 6명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이제는 화석정으로 ↓
근디 저건물은 북쪽 건물인가?
건물형태를 보니 남쪽 건물같은디 ↓
화석정앞의 느티나무들 몸통봐라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
화석정이란다 현판글씨는 박정희 글씨라는데 ↓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였다.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깊은 곳이다.
정자 주변에는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그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락가락 하였으며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호화찬란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임진강을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고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어 쓸쓸하다.
율곡 선생은
평소 정자에 제자들과 함께 기둥과 서까래 등에 들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먹여 두었다고 하는데,
훗날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파천할 당시(4월 29일 밤)
억수같은 폭포속에서 강을 건널 때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질러 무사히 배가 강을 건넜다고 전한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당시 그의 학문에 반한 중국의 칙사(勅使) 황홍헌(黃洪憲)이 찾아와
시를 읊고 자연을 즐겼다는 설도 있다
임진왜란때 불 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있는 것을
현종(顯宗) 14년(1673)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李厚地) . 이후방(李厚坊)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 뒷면에는 율곡선생이 8세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八歲賦詩)가 걸려있다.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八歲賦詩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숲) 속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이밖에도 서기정, 권남, 정철, 송시열 등 많은 문인들이 여기서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암튼 화석정에서 조망한 임진강이다
느티나무아래에서 얼마나 시원한지 한참을 쉬고 이동했다 ↓
임진나루터주위와 장산전망대 ↓
소품인데 잔차가 지붕위에 ↓
임진강에서 퍼올린 인공 농수로 ↓
이렇게 더위속에 지쳐갈때쯤 ↓
지하도를 지나니 ↓
율곡공원이 펼쳐지고 ↓
차량주차한곳이 앱상으로는 끝인데 인증센터는 약
100미터앞에 있다 갈까말까 하다 넘 더워 포기하고 줌으로 땡겨 인증하고 여기서 7코스를 마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