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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속의 여유 두발로

서울『한양도성순성길』백악.인왕산구간 으로 순성길을 마무리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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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한양도성순성길』백악.인왕산구간 으로 순성길을 마무리한다

조장운 2021. 6. 3. 08:56

해발 339m인 인왕산은 풍수상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단다

한양도성 두번째 혜화문에서 시작해 백악산을 넘고 인왕산을 넘어

하산하면서 조망한 선바위와 지금은 부대가 자리를 차지한 인왕산 곡성을 조망한다 ↓

 

한양도성 성곽길 걸어보기

◈언제:2021 /6/2(요일)

◈소재지: 서울

◈코스 : 혜화문→백악산구간→창의문→인왕산구간→돈의문터

◈거리 : 11.5km G.P.S. 실 트랙

◈시간 느림 속의 여유시간

◈교통: 대중교통(지하철)

◈누구랑 : 마누라와

◈날씨 :폭염날씨 최고기온 29도

◈시야와 조망 상태: 흐림 좋지않음

개 념 도 ↓

 

한양도성 순성길종합 G.P.S.구글 위성트랙 ↓

혜화문에서 돈의문터까지 G.P.S. 트랙 ↓

고도표 ↓

 

서울 한양도성

조선 시대 한양을 둘러싼 도성(都城)이다.

좁은 의미로는 서울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줄여서 한성(漢城)으로 불렸으며, 사적으로서의 명칭은 지정 당시 서울성곽으로 정했다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양도성은 1396년 태조에 의해 축조되었고, 세종, 숙종, 순조 시기에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이 훼손되었으나,

1974년 박정희 정권 시기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돼 2013년 기준으로 총길이 18,627m 중 약 70% 구간이 남아 있다.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자격이 부여되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으나,

2017년 3월 등재 불가 통보를 밟으면서 무산되었다.

 

탐방 구간

한양도성의 탐방 구간은 서울특별시의 분류에 따르면 아래의 6구간으로 나뉜다.

오늘은 2개구간(백악구간과 인왕산구간)을 탐방하여 마무리를 했다 ↓

일주일전에 돈의문터에서 남산을 넘어 혜화문에서 끝마치고

오늘 혜화문에서 돈의문터까지 한양도성 순성길을 마친다 날씨가 오늘은 폭염에 가깝다

어제비가오고 습기빵빵하게 오르면서 기온까지오르니 더워서 미치고 환장하겠더라

집사람 1리터 물을 준비했지만 무게를 줄이려고 절반으로 준비하고 대신에 막초 한병 있으니

가능하겠지 하고 오르지만 초입부터 육수가 쏟아지고 어~~어 이거 장난이 아닌데 하면서 중간에 막초한병 비우고

물이 막 땡기는데 준비한 물은 단숨에 마셔버리고 이제 물도 없고 어짤까 인왕산을 넘으면서 고민많이 했구만

다행히 두명의 젋은 여인이 올라오면서 2리터 생수를 무겁게 들고 올라오더만 아이구야~~ 젊은이 생수좀 얻을수

있을까 했더만 공손하게 물을 내어주더만 아~~~ 오아시스다 절반을 얻어 마시고 내려가니 살것 같고 암튼

이제 여름철은 생수는 여유있게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고 시야가 좋지않는 날씨에

순성길 두번째 마지막 구간을 올려본다

서울 한양도성 seoulcitywall.seoul.go.kr/ 참고

 

백악구간

구간 : 혜화문~창의문
거리 : 4.7km
소요시간 : 약 3시간

 

혜화문에서 백악을 넘어 창의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백악(북악산, 342m)은 옛 서울의 주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높다.

공극산(拱極山), 면악(面岳)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세가 ‘반쯤 핀 모란꽃’에 비유될 만큼 아름답다.

한양도성은 백악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40년 가까이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두번째 한양도성 순성길은 혜화문에서 시작한다

오늘 마무리 할 계획이다 날씨가 워낙 더워 집사람이 은근히 걱정되지만 어디한번 부디쳐보자 ↓

 

혜화문(惠化門)은?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년(1511)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문루가 없던 것을 영조 때에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 본래 자리보다 북쪽에 새로 지었다.

 

혜화문을 담아보려 했지만

거리가 짧고 나무가지로 인해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출발한다 이정표따라 ↓

 

성곽을 따라 가지만 좁은도로에 사람과 차량이 뒤섞여 어수선하더라 ↓

성북동과 저멀리 북칸산 문수봉이 조망되고 ↓

 

아~~ 증말 좁은 골목에 출근시간이라

지나가는 차량땜시 정말 혼잡하게 골목도로를 빠져나온다 ↓

 

좁은 도로를 빠져 나오니 이제는 차량들과 안녕이라

이제야 마눌이 평온함이 찾아왔다고 하는데 와룡공원 초입을 오른다 ↓

 

올라야할 성곽이 조망되고 ↓

 

북정마을로 빠지는 쪽문도 있네요 ↓

 

성곽을 잘 복원해놨다 ↓

 

시실 북악산과 인왕산 오름길은 계단의 천국이라

나야 계단길에 익숙해서 별 꺼림은 없지만 시러하는 사람은 엄청 시러하더만 ↓

 

이번에는 성곽 밖으로 걸어본다 ↓

 

햇빚 지외선이 장난아니다 마치고 집에와서 얼굴이 벌거케 익었더만 후끈후끈하다 ↓

 

좌측에 삼청각이 한참 수리중이네요

한때 요정으로 날렸을때 말이많고 탈도 많은 곳인데 지금은 문화 공연장으로 탈바꿈 한다는데 ↓

 

올라야할 북악산이다 처음으로 올라 가슴이 설레인데 ↓

 

말바위에 도착한다 ↓

 

시야가 워낙 안좋아 조망은 생략하고

그나저나 저기서 막초 마시려 했지만 젊은 처자가 명당을 차지해서 지나친다 ↓

 

좋은 조망처다 ↓

 

말바위 에서 조금 진행하니

통제하는 건물이 나오고 군복은 입지 앉았으나 짧은 머리의 젊은이가 우리에게 통행증 목걸이를 주더라

전에는 신분증 검사도 했다는데 시방은 신분증 검사는 안하고 냥 통행증만 주더만 ↓

 

얼마후 숙정문이 나오고

숙정문(肅靖門)은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이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숙정문 안내소에서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다. ↓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뚜렸하게 조망할수 있고 ↓

 

여기서 백악곡성에 다녀오기로한다

배낭내려놓고 혼자 다녀오기로 하는데 중간쯤 오르다 가기가 시러 다시 내려온다 ↓

 

청운대 정상석 ↓

청운대에서 얼마안가니 총탄맞은 소나무가 ↓

1·21 사태 소나무
청운대에서 백악마루로 오르는길에 1·21 사태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200년 정도 된 나무인데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이 총탄 자국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이 교전한 흔적이다.

이곳에서 성 바깥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백악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선혜청의 부속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다시 백악산을 향해 꾸역꾸역 오르고 ↓

 

백악산 찍고 내려와 이길로 길을 이어가야 하는데 폐쇄되었다

일단 백악산 찍고 생각해보자 하고 백악산에 오른다 정상에는 사복입은 초병이 지키고 있더만 ↓

 

 

백악마루
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白岳山 海拔 342m’라고 적힌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 서면 경복궁과 세종로는 물론 한강 건너 63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 성을 쌓을 때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눴는데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으니

시작 구간은 천(天), 끝나는 구간은 조(弔)였다. 이곳이 바로 천(天) 구간에 해당한다

 

 

주변은 사방으로 길이 폐쇄되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

 

 

북악산에서 내려와 폐쇄된 길을 한참 바라보다

나 하나쯤 지나간다고 뭐가 어쩌랴 공사중이라는데 살짝 피해가면 될걸

하고 내려가보는데 웬걸 바로 반대편에서 사복입은 초병이 올라오면서 제지하더라

어이구 여기는 무서운 동네구만 하고 기겁을 하고 돌아간다 할수없이 청운대로 다시 내려가

안내소 방향으로 우회한다 ↓

 

여기서 안내소 표찰 반납하고 ↓

 

 

저멀리 인왕산과 옆에 기차바위를 조망하면서 창의문으로 우회한다 ↓

 

 

계단데크가 이번에 만들었나 깨끚하게 잘 정돈되었다 ↓

 

 

지나서 ↓

 

골목과 도로를 동시에 이용하는 길을 따라 ↓

 

 

창의문에 도착 순성길에 합류한다

창의문(彰義門)
< 보물 제1881호>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17년(1741) 다시 세운 것이다.

영조 때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어놓았다. 이 현판은 지금도 그대로 걸려있다.

현재는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리는데,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였던

자하동과 비슷하여 붙은 별칭이다. ↓

 

인왕산구간

구간 : 돈의문 터 ~ 창의문
거리 : 4km
소요시간 : 약 2시간 30분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인왕산을 넘어 돈의문 터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해발 339m인 인왕산은 풍수상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한다.

거대한 바위들이 노출되어 있는 바위산으로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다.

인왕(仁王)은 불교식 명칭으로, 무학대사가 이 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불교가 융성할 것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개방되었다.

 

이제는 마지막 구간 인왕산구간을 시작한다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오르면서 시작한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데 ↓

 

이 도로는 옛날에 북악 스카이로 연결된 드라이브 길인데

참 오랫만에 본다 순성길은 이도로와 함께 진행하다 ↓

 

 

도로건너 본격적인 인왕산 산행보다는 계단길이 시작된다 ↓

 

 

오르면서 청화대를 조망하는데 집구조가 하나였나? ↓

 

더위와 목마름과 계단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

 

오르면서 북악산을 뒤돌아본다 ↓

 

 

잉? 여기도 공사중이란다

다만 여기는 바로 옆길로 우회할수 있어 다행이고 ↓

 

 

부부소나무란다 ↓

 

 

오르면서 이제야 청화대가 제대로 조망된다 ↓

 

 

덕수궁도 줌으로 땡겨본다 ↓

 

 

북한산 문수봉 아래 와~~ 빡빡한 저 민가들을 보라 꽉 찼구만 평창동 일대인것 같은디 ↓

 

 

북악산 다시 뒤돌아 조망하고 ↓

 

 

가운데 그린지역이 낙산공원인듯 우리가 그짝에서 걸어왔건만

 

 

남산에서 붉은 빌딩이 신라호텔로 대충 순성길이 눈으로 그려지는 모양새다 ↓

 

덕수궁 다시한번 조망해보고 ↓

 

더위에 힘들게 인왕산에 도착한다

해발 338m인 인왕산은

큰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으로 정상에 가까울수록 험준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자연 암반이 성벽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큰 바위들과 어우러져 끊어질 듯 이어진 성벽은 한양도성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인왕산 정상 가까운 곳에는 무악재와 안산(무악) 방향으로 길게 돌출된 곳이 있는데

이런 지형을 활용하여 곡성(曲城)을 쌓았다.

곡성이란 주변을 관찰하기 좋은 전략적 요충지에 성벽을 지형에 따라 길고 두글게 내밀어 쌓은 성을 말한다.

인왕산 곡성은 현재에도 군사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

 

여기 인왕산 아직도 정상목이네 정상석 세울만도 한데 ↓

 

 

인왕산에서

서대문 돈의문 터까지 하산해야할 순성길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고 ↓

 

내려오면서 뒤돌아본 인왕산 ↓

 

이쪽의 단점은 그늘이 없다는게 단점이라 얼굴이 아예 익어버렸다 ↓

 

사직터널 위에서 잠시 알바하고

다시 정상적인 순성길이 주택가로 이어지는걸 확인하고 ↓

 

 

주택가에서 빠져나오니 마지막 성벽과 해후하고 ↓

 

여기가 마지막 성벽이다 좌회전하면 돈의문 터가 자리잡고있다 ↓

 

돈의문 터

아무런 흔적도 표시도 없다

돈의문 터 (敦義門)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이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태종 13년(1413)에 만들어진 서전문(西箭門)이 서대문의 기능을 대신하였다.

그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종 4년(1422)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서전문을 닫고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현재 돈의문 터가 그 위치이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라는 지명도 이에서 유래한다.

1915년 일제는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여 건축자재로 매각하였다.

현재 돈의문 터에는 공공 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는데 나는 못보고

여기서 한양도성 순성길을 종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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