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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속의 여유 두발로

서울 『북 악 산』ㅡ54년만에 개방된 신규개방구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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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 악 산』ㅡ54년만에 개방된 신규개방구간

조장운 2023. 12. 4. 15:28

서울 경복궁() 북쪽에 솟아 그 진산()을 이루어온 산 북악산

54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 춘추관에서 청와대 담장 따라 북악산을 올라본다  ↓

 

북악산(  )342m

◈언제:2023/12/03일(요일)

◈소재지:서울특별시

◈코스: 경복궁역4번출구→춘추관→만세동방→청운대→북악산→창의문

◈거리 : 5.09km 

◈시간 :(느림속의 여유시간)

◈교통: 대중교통 지하철

◈네비: 

◈누구랑 : 울부부

◈날씨 : 맑음 영하3도 

◈시야와 조망상태곰탕시야

 

등산개념도  ↓

 

 

산길 샘 앱으로 보는

실제로 진행한 트랙  지도에 청화대는 안 나오네요  ↓

고도표  ↓

 

통계수치  ↓

도대체 추위에 아직은 적응이 안 된다 코리아 둘레길 서해랑길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추위 속에 바닷바람을 맞이하는데 자신이 없어 오늘도 

서해랑을 미루고 가까운 북악산을 찾아본다 한양도성 종주 때 올라봤지만 

이번에 54년 만에 개방된 청와대 담장을 끼고 올라가는 등로가 개방되어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이번에 올라본다 북악산은 말이 산행이지 산행보다는 

산책코스라고 해야겠다 또한 데크계단과 세면계단에 익숙치 않는 사람들은 

오르내릴 때 상당히 무릎의 고통을 느껴야 할 것이다 계단길이 거의 60프로 이상

되는 것 같은데 암튼 부담 없이 한나절 산행으로는 한 번쯤은 가볼 만한 산행이다  

 

산행이야기  

 

 

이곳 지리에 어두운 사람들은 하나의 걱정거리가 

지하철역에서 춘추관을 찾아가는 일이다 물론 택시 타고 가면은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대중교통으로 갈 때 은근히 걱정거리가 되어 경복궁역에서 출발과정을 이렇게 나열해 봤다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지도에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가면 무난할 것이다 시간은 약 15분에서 20분 사이 

산행거리가 짧기에 여기서부터 걸어가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광화문 앞에 이번에 월대(왕의 길) 월대가 100년 만에 복원되어 검은색 화살표 방향으로 

광화문 월대를 구경하면서 걸어가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빨간 화살표방향도 무방하다

안국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에서도 가능하다   ↓

 

 

산행기는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부터 기록한다  ↓

 

 

4번출구에서 나와 광화문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으로 돌담 끼고 춘추관으로 진행해도 된다  ↓

 

 

우측으로 진행하는 길이다 

우리는 광화문을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횡단보도 건너 

광화문방향으로 직진 한다  ↓

 

 

광화문 방향으로  ↓

 

 

광화문이다  ↓

◐100년 만에 복원된 광화문월대◑

1395년(태조 4)

경복궁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태조 8)에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을 때 세웠다.

처음에는 '사방에서 어진이가 오가는 정문'이라는 뜻의 사정문(四正門),

혹은 '닫아서 이상한 말과 사특함을 막고, 열어서 사방의 현인들을 들어오게 하는 모든 바른 것들 중에서도

큰 것'이라는 뜻의 '오문(午門)'으로 불렀다.

1425년(세종 7) 집현전 학사들이 지금의 이름인 '광화문(光化門)'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광화문에는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와 백성을 비춘다'는 뜻이 있다.

임진왜란 때 훼손된 것을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 재건했다.

그러나 1927년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축소 이전되었고,

이후 6·25 전쟁 때에는 폭격을 맞아 불타 소실되고 말았다.

전후 1968년 12월 석축 일부를 수리하고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중건했지만,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처마의 선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지 못하고

직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원래의 모습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현판 역시 당대의 한자 현판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을 사용하여

고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6년 문화재청의 주도로

경복궁 복원공사와 함께 해체된 후 본래의 제자리를 찾아 목조로 복원되었고,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추어 공개되었다.

현판은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환 '光化門'이 걸렸다.

그러나 복원 작업의 일정을 무리하게 진행했기 때문에 현판과 목재에서 균열이 발견되어

보수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2016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93년 무렵의 광화문 사진에서

현판의 글씨가 바탕색보다 밝아 보여 현판 색깔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문화재청은 여러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실험용 현판을 제작해 실제 사진을 찍어보며

비교분석했고, 그 결과 광화문의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라는 것을 밝혔다.

이에 따라 201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원형에 의한 새 현판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고 제작에 착수하여,

2023년 검은색 바탕에 금판으로 된 현판으로 교체하고 10월 15일 공개했다.

새 현판은 고종 때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任泰瑛)이 한자로 쓴 글씨를 바탕으로 삼았다.

같은 날 광화문 월대가 복원되어 공개되었다.

광화문 월대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에 전차 철로를 부설하면서 훼손되었으며,

2022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하여 옛 모습이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월대는 궁궐과 같은 주요 건물에 넓게 설치한 대(臺)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장소였다.

광화문 월대는 조선 시대 월대 가운데 유일하게 기단을 쌓고 난간석을 둘러쌓았으며,

남북 48.7m, 동서 29.7m 규모로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왕의 길인 어도지의 너비는 약 7m이다.

어도 앞부분 끝에는 서수상 2점이 남쪽을 바라보고 배치되었으며,

기존 광화문 옆에 있던 해태(해치)상도 복원된 월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

 

 

 

 

광화문에서 조망한 인왕산 

운동량이 적으면 북악산 걸쳐 인왕산 오르고 내친김에 안산까지 종주해도 될 것  ↓

 

 

아침일찍이라 한가해서 걷기가 편하다  ↓

 

 

경복봉사거리 동십자각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방향전환한다  ↓

 

 

우회전해서 경복궁 담장 따라 진행한다  ↓

 

 

진행하다 건너편의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진행하는데 국립민속박물관 앞을 지나간다  ↓

 

 

돌담따라 여유 있게 유유자작 ㅎㅎㅎ  ↓

 

 

돌담 넘어 하늘을 본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 

오늘 시야가 좋구나 했지만 하늘만 파랬지 시내구간과 주위는 곰탕시야로 변한다  ↓

 

 

돌담을 우측으로 꺾어 진행하다 보면  ↓

 

 

춘추관 건물이 보이고 무조건 춘추관 안으로 드가야한다  ↓

 

 

춘추관 대문에는 안내원이 서 있다 

등산한다고 하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

 

 

춘주관 안으로 들어와서  ↓

 

 

춘추관 전경을 한번 살펴본다  

춘추관(春秋館)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건물이다.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 언론사 기자 78명이 상주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로서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담화발표 등을 하는 소회견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문화행사 등을 하는 다목적실이 있다 (지금은 용산에서 하겠죠? )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언론의 정신을 잘 상징한다는 뜻에서 채택되었다.

고려시대 시정(그 당시의 정사)의 기록을 맡아오던 관청으로

고려 개국 초에는 사관이라 하다가 1308년(충렬왕 34) 이를 문한서에 병합하여

예문춘추관으로 고쳤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예문관과 갈라져 춘추관으로 독립했다.

춘추관은 다시 1356년(공민왕 5) 사관으로 개칭하였다가

1362년 다시 춘추관으로 되고 1389년에는 예문관을 합하여 예문춘추관으로 환원되었다.

조선 개국 당시에는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예문춘추관이라 하다가

1401년(태종 1) 예문관과 분리하여 춘추관으로 독립되었고,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

 

 

등산로 입구를 가려면 춘추관 전시관을 통과해야 한다

전시관 안에 들어오면 요로코롬  ↓

 

 

그리고 이것저것 춘추관의 이모저모를 거시기해준다  ↓

 

 

전시관에서 빠져나오면 잔디 광장과 함께 

오늘 올라야 할 북악산이 조망되고  ↓

 

 

저 문으로 올라가야 한다  ↓

 

 

경사진 도로를 따라  ↓

 

 

바닥에도 이런 등산안내 표지가 있어 도움이 되고  ↓

 

 

좌측에는 돌담 우측에는 철조망사이로 계속 오름을 해야 한다  ↓

 

보이는 산줄기는 한양순성도성길로 백악구간 능선으로 숙정문이 있는 곳이다  ↓

 

 

북악산이 가지사이로 조망된다  ↓

 

 

문재인대통령  김정숙여사님의 기념식수가 잘 자라고 있네요 ↓ 

 

 

경비 철망과 북악산  ↓

 

 

계속해서 언덕길을 올라와야 된다  ↓

 

 

저 암벽은 가오리처럼 생겼고  ↓

 

 

언덕 정상부에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칠궁에서도 올라올 수가 있다 그 길도 신규개방된 길이다  ↓

 

 

이어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기념사진들을 찍으면서 어수선하는데  ↓

 

 

백악정이란다 쉼터도 있고 특별한 조망은 없다  ↓

 

여기도 전임대통령 부부 기념식수가 있고  ↓

 

 

다시 세 번째 철문을 통과하게 된다  ↓

 

 

이제야 등로라 할 수 있는 길이 펼쳐지고  ↓

 

 

역방향이고 시야가 곰탕시야로 우중충한 시야로 남산타워를 조망해 본다  ↓

 

 

아마도 여기까지가 새로 개방된 길이 아닌가 싶고  ↓

 

기온은 영하 3도이지만 오름길을 걸어서인지

바람이 없었어인지 비교적 산행하기에는 적당한 온도인 듯하고  ↓

 

 

가끔씩 거친 오름길도 있다  ↓

 

 

저기는 만세동방이라는데  ↓

 

 

저 한자는 무슨 의미인가? 

내 머리로는 불가하고 뒤져서 올려봅니다 

 

만세동방 성수남극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의 글)

萬世(만세): 만년의 세월(오랜 세월)

東方(동방): 삼천 살을 살았다는

전설 속의 동방삭

聖壽(성수): 성스러운 수명(임금의 수명)

南極(남극): 남극 하늘에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전설

[출처] 북악산, 만세동방 성수남극|작성자 산수처럼    

 

 

약수이지만 음용은 하지 말라고 한다  ↓

 

 

잠시 쉬면서 

저 높은 빌딩이 아니면 위치 파악이 안 될 텐데 

잠실의 높은 빌딩이 보이니 그 짝이 잠실인듯 하고  ↓

 

 

이제는 데크계단과 세면계단과 익숙해져야 한다  ↓

 

 

저 산줄기 끝은 혜화문이 있을 것이다 

한양도성순성길이다 완주한 지가 몆 년 지났네요  ↓

 

 

여기서 이정표를 자세 히 볼 필요가 있다 

우리야 춘추관에서 올라왔으니 별 상관은 없지만 

창의문에서 올라와 청와대 방면으로 하산할 때는 이 이정표가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

 

청운대 삼거리 이정표에 만세동방 방향으로 하산하면 춘추관이나 

칠궁쪽으로 하산할 수 있다는 사실 중요 포인트인 것 같다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ㅎㅎㅎ  ↓

 

 

청운대 쉼터 화장실이다 

벌써 많은 인파들이 간식 먹고 히히덕거린다  ↓

 

 

이제는 여기는 벌써 두 번째이기에 조금은 눈에 들어온다  ↓

 

 

청운대다  ↓

 

 

청운대 맞은편에는 북한산 비봉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비봉능선 나한봉인가?  ↓

 

 

그리고 경복궁과 세종로는 곰탕으로  ↓

 

1.21 사태 소나무 탄활자국  ↓

 

 

급경사 계단을 오르면 북악산 정상이 나오고  ↓

 

 

정상석 북악산이라 하고 백악산이라고도 한다는데  ↓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된 이름이다.

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 

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되었으며 그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다.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산정부에는 백악산신을 모시는 신사가 만들어졌다.

1394년(태조 4년)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景武臺)도 이곳에 위치했다.

현재도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靑瓦臺)가 북악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인왕산(仁王山)·낙산(駱山)·남산(南山)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이 남아 있으며

부암동 뒤쪽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계곡이 있다.

북악산은 예전부터 소나무가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을 찾아

탁족회(濯足會)를 자주 열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후 소나무가 벌채로 사라지고 현재는 참나무류가 많다.

북악산 산정을 내려와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다.

창의문에서부터 정릉(貞陵)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三淸)공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악산 [北岳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정상부 주위  ↓

 

 

한양도성 순성길 백악구간 조망  ↓

 

 

이제는 하산길로 

굉장히 계단 경사가 급하게 내려선다  ↓

 

무릎 상할라 조심조심  ↓

 

 

뒤돌아보니  ↓

 

 

창의문 안내소  ↓

 

 

창의문  ↓

 

 

창의문에서 내려서 도로에서 종료하고 길 건너가 

버스 타고 경복궁역으로 원점회기 하여 지하철 타고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비록 짧은 산행이었지만 모처럼 개방된 등로를 걸어본 것을 의미로 두고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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