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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속의 여유 두발로

서해랑길96코스『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자유공원입구』ㅡ역진행 본문

카테고리 없음

서해랑길96코스『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자유공원입구』ㅡ역진행

조장운 2023. 8. 21. 11:45

원적산 오르는 길 

원적산의 '원'자의 한자 표기는 본래 원(怨)으로 ‘원한 맺힌 산’이란 뜻이라 한다.

전해지기로 경인운하(현 굴포천) 를 굴착하는데 원통이 고개를 파도 암석이 나와 실패하고

또 아나지고개를 파도 암석이 많아 실패를 하자 원통하고 원한이 맺힌 산이라고 해서

원적산(怨積山)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원적산(元積山)으로 고쳐 쓴 것이다

한남정맥 마루금 원적산을 오르면서    ↓

『 서해랑길 96코스』ㅡ서해바다와 갯벌이 그립다

◈언제 2023/08/ 19(요일)  

◈소재지: 인천광역시

◈코스경로: 대우하나아파트버스정류장→원적산→송림오거리→자유공원입구

거리 : 14.60km

◈시간 :(느림 속의 여유시간)

◈교통자차 (날머리주차) 자유공원입구 

◈네비: 시작: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산21-51 (대우하나아파트 버스정류장 부근)

                                       종료: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3가 6-9 (선린문 부근)

◈누구랑 : 마눌과 

◈날씨 : 맑음   32도 폭염 

◈시야와 조망 상태 불량  연 박무로 근거리만 볼수있다  

 

96코스G.P.S위성지도  ↓

 

산길 샘 앱으로 보는

실제로 진행한 네이버 HD지도(트랙.고도표)      ↓

 

통계정보   ↓

 

 

서해랑길 96코스는 

역 진행하기로 한다 기온이 오를 대로 오를 때 산을 타는 것이 무리이고 

또한 체력저하 때 무리하면 탈 날 것 같아 차라리 그래도 조금이라도 기온이 

낮을 때 먼저 산을 타고 그 후에 도로를 걷더니 두 바퀴 도움을 받더니 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아 그리 시행했다 아무리 아침 일찍 시작해도 요놈의 습한 기온 때문에 

땀은 1시간도 안 돼 목에 두른 수건이 더 이상 수건역할을 못하고 물수건으로 변하더라 

수건을 지금 계절에는 2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물 또한 거의 3리터를 얼려서 가지고 

다닌다 물 무게만 해도 꽤 무거운 무게다 이미 1리터는 원적산 직전에 다 마셔버리고 

암튼 살려면 물을 여유 있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은 두 바퀴와 함께 동행한다 

산속에는 가지고 다닐 수 없기에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지도를 잘 살펴 그 주위에 잔차를 모셔놓고 

도로와 공장지역은 잔차 신세를 지었지만 그놈의 신호대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도 수월치 않았고 

비록 잔차를 이용해도 주어진 길로 가려고 오름길에는 끌바를 했고 계단은 등에 메고

어찌 보면 두 발로 걷는 것보다 더 힘든 느낌이었지만 집사람이 워낙 좋아해서 나 또한 좋아하는 

집사람을 위해서 까짓것 꼭 두 발로만이 가라는 법은 없잖나? 하고 마음이 바뀌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서해랑길 이야기 ◑ 

 

오늘 사용한 카메라 ↓

 

 

바쁜 하루가 시작됐다 

주말이라 정체 예상되고 더 서둘렀다 

중간에 자전거 내려놓고 자유공원 날머리에 자차 주차하고 

카카오택시 불러 여기 들머리에 도착한다 

오늘은 종반에 지친 상태에서 산을 넘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아예 시작부터 산을 넘어가자 해서 역 진행하기로 한다 

(여기 이 지역은  한남정맥 때는 아나지고개라 하였는데 개발이 되어 흔적이 없다)  ↓

 

 

97코스 종합안내판인데 

우리는 96코스 하는데 집사람 자동으로 인증 포즈를 취한다 

뭐 박아주는 데는 문제없지만 ㅎㅎㅎ 암튼 97코스도 미리 인증했네요  ↓

 

 

자~~ 출발합시다 

따라가기앱에서 이탈경고음이 난다 

아무생각 없이 진행한것이다 반대로 진행해야 하는데 

확인하지 않고 생각없이 진행하니 ㅎㅎㅎㅎ  초반부터 알바했다 되돌아와서 반대로  ↓

 

그런데 종합안내판 앞에 유리칸막이 속에 주차장이 보인다 

아~~  여기다 주차해도 될 뻔했는데 정보가 없어 자유공원에 주차하고  ↓

 

주차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임시 주차장인 듯 언제 건물 올릴지는 미지수고 암튼 올해까지는 주차가능할 것 같고  ↓

 

 

횡단보도 건너서  ↓

 

 

횡단보도 끝에 저 방향 스트커 보고 오해했구먼 

왜 남색이지? 붉은색이야 하는데? 집사람하고 관계자를 흉봤구먼 

역 진행하는지는 모르고 ㅎㅎㅎ  당연히 역 진행하니 남색이어야 하고 

옳게 붙인 스트커만 오해하고 오늘 초반부터 알바하고 오해하고 정신없어 

더위 탓인가?    ↓

 

 

그런데 주위의 건물들이나 

바닥보도블록들 다 새 물건들이다 

이제야 완공했다는 것이다 앱을 보니 약간 벗어나 있다  ↓

 

빨간색이 전의 트랙이고 초록색이 지금 진행 중인 트랙이다 

진행길이 일부 변경되었는데 트랙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리본이나 

방향스티커들은 변경된 길로 붙어있으니 진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 

 

 

육교데크도 아직까지 새것 냄새가 난다 

완공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

 

 

공원역시 잘 꾸며놓았다 바닥이 새 바닥이라 기분은 그리 나쁘지는 않다  ↓

 

 

짧은 공원에서 빠져나와 

우측으로 도로 따라 진행되고  ↓

 

 

여기서 도로 횡단하고  ↓

 

 

도로횡단해서 또다시 도로따라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드가는데  ↓

 

 

여기서부터 장고개공원까지 

한남정맥 마루금과 거의 동일하기에 

올려본 거고 중간중간 추억이 떠오르면 같이 추억을 즐겨보고자 한다  

빨간 라인 한남정맥 마루금 초록라인  서해랑길  ↓

 

 

다시 숲길로 들어온다 

한남정맥 마루금과 함께 진행된다  ↓

 

 

당연히 올라가야죠 

햇빚은 없는데 습도가 높아 얼굴에는 땀이 벌써 주르륵주르륵 ↓

 

 

둘레길 이름이 참 이쁘죠?  ↓

 

 

원적정까지 이렇게 길을 잘 꾸며놓았습니다  ↓

 

 

중간중간 조망 터진 곳이 있지만 시야가 연. 박무로 

눈으로는 바다가 보이는데 카메라상으로는 바다가 안 보이네요  ↓

 

 

길을 쓸고 닦고 반질반질합니다  ↓

 

원적정이네요 

올라가서 조망해 볼까 했지만 지금 이 시야로는 불가능해 그냥 지나칩니다  ↓

 

 

 

원정정에서 다시 진행하니 얼마 안 되어 

거친 길이 나오고 아마도 저 거친 길을 오르면 원적산 정상인 듯  ↓

 

 

이 거친 암릉을 보니 13년 전 이맘때 이곳이 생각납니다  ↓

 

2009년 8월 12일에 한남정맥 종주 때 역시 원적산을 오르는 마눌 

그때는 덜 파였는데 어찌 날짜가 그때도 더운 날에 했고 이번에도 더운날에 

운명인가?  ↓

 

 

올라오면서 뒤돌아보고  ↓

 

 

원적산 정상이다 

한남정이란다 저 정자는 

한남정맥 때는 정자도 없었고 정상석도 없었는데  ↓

 

인증하고  ↓

 

 

한남정맥때는 정상석이 없었고 

이렇게 바닥에  바닥석으로 원적산을 알려주었네요  ↓

 

 

원적산의 재미있는 유래가 있어 

서두에 이어 다시 이어갈까 합니다 

예로부터 삼남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는 쌀 운송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루트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가 강화도의 ‘손돌목’을 지나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보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손돌목이 물길이 험해 사고가 많이 났다.

사고를 피하고 뱃길을 단축하고자 지름길이 될 운하를 파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를 굴포(掘浦)(굴포천과 굴포천역에 이름이 남아있다)라 하는데

  (굴포천 애기는 경기둘레길 때 기록한 것이 있음)

고려 고종 때 먼저 강을 뚫고자 구상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고,

또 조선 중종 때의 문신 김안로가 한강에서 인천 북항을 잇는 운하를 뚫는

굴포작업을 시작했는데 한강에서 부평 벌판을 거쳐 원통이 고개 앞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런데 이 고개가 전부 암반으로 깔려있어 도저히 뚫지 못해 실패하였으니

그간 큰 고생을 하였는데 이 고개를 못 뚫어 모두가 허사로 돌아갔으므로

그만 원통하다고 하여 원통이 고개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통이 고개라는 이름 유래와 같이 원적산이라는 이름도 원통함이 쌓인 산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원통이 고개는 만월산 자락의 동수역과 부평삼거리역과 

간석오거리역을 지나는 경인로 고개다.

만월산의 또 다른 이름이 원통산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삼남지방에서 나라에 바치는 쌀 운송 두 번째 루트는

지금도 그 흔적이 이름으로 남아 있는 서구 원창동(元倉洞)의 창고에

일단 짐을 부려 놓고 그곳에서 다시 육상운송을 통하여 한양으로 올라가는 루트였다.

이 루트를 선택했다면 지름길로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가 바로 아나지고개였다.

산적들이 이 아나지고개에 숨어있다가 나라에 바치는 이 쌀들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해

조정에서 여러 번 토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 경인운하를 파고자 할 때 한강에서 굴포천으로

그리고 굴포천의 한 지류인 맑은 내(청천淸川)를 파고 또

아나지고개를 파서 바다로 연결하려 시도했으나 암반 투성이라 더 이상 뚫지 못했다.

그래서 아나지고개가 있는 산의 이름이 원통함이 맺힌 산이라는 뜻의 원적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원적산에서 내려간다  ↓

 

 

가야 할 능선봉우리  ↓  ↓

 

 

천마산도 보인다  ↓

 

 

다시 한번 까칠한 길을 오르고  ↓

 

 

정상부 봉우리인데  ↓

 

 

이 봉우리에 삼각점도 있다 

오히려 여기가 원적산 느낌이 난다  ↓

 

다시 내려가고  ↓

 

 

여기서 뚝 떨어진 저 밑으로 내려가  철마산으로 오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

 

 

원적산에서 내려와 도로 건너 

바로 데크계단 오르는데  ↓

 

 

전에 한남정맥 때는 아파트 아파트입구로 들어가 

이런 철계단으로 철마산을 올랐는데 지금은 도로에서 바로오르겠큼 했다  ↓

 

역시 거친 길이다 

이 지역 자체땅들이 거친 땅 들이다  ↓

 

 

연약한 여인네가 무슨 힘으로 올라오는지 때로는 안쓰럽기만 하다  ↓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철마산으로 진행해도 되는데(노란 점선) 왜 사면둘레로 진행한 지가 의문이다 

물론 사면둘레로 진행할 때는 거의 평지라 좋았는데 보각사 앞에서 다시 계단 올라 

오르막길을 올라서 능선으로 진입시킨다 그 자체가 짜증 나는데 차라리 아예 철마산으로 

오르게 했으면 이런 짜증은 안 날 텐데 하는 말이다 역진행하는분들은 차라리

철마산으로 오르면 오히려 편할 수가 있겠다    ↓

 

 

철마산을 우회해서 사면둘레를 빠져나온다 

여기서 잠깐 집사람 배고픈 다해 가져온 간식 먹는데  

여기 앉아서 먹는데 웬 모기들이 흡혈귀처럼 덤빈다 긁고 꿈틀거리고 결국 먹다가 

일어나 도망간다  ↓

 

 

좌측담벼락은 군부대 담벼락이고

쭈욱 올라가면 보각사 절이 나오고 거기서 다시 

계단 올라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엄청 짜증 나더라 

차라리 철마산으로 오르고 내려오면 간단할 텐데  ↓

 

 

짜증 나게 능선에 오르고 다시 진행한다  ↓

 

 

조망 터진 곳에서 우측으로 보다가 보인다 시원치는 않다  ↓

 

 

장고개는?  ↓

 

장고개공원이다 

여기서 한남정맥과 작별하고 우리는 아래로 내려간다  ↓

 

 

혹시나 나처럼 중간에 잔차이용할 실 분들 

산길 내려오면 바로 이런 건물이 네비에 나와 있다 여기치고 주위에 잔차 묶어놓고 하면 될 것이다  ↓

 

 

내려오니 버스 종점으로  ↓

 

 

이제는 이런 길로 공단길을 시내길을 외곽으로 진행한다 

당연히 지루하고 짜증 날 것이다  ↓

 

 

허름한 연립주택 난간에 내 잔차 회수한다 

아무래도 전기자전거라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

 

정해진코스로 똑같이 진행한다 

언덕은 끌바 하고 계단을 등에 메고 하지만 계단은 딱 한 군데만 있고 

두 번의 언덕이 있어 끌바 한 것이다  ↓

 

횡단도 수십 차례 해야 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15분 정도는 소비한셈이다 신호대기로 인해  ↓

 

 

좌. 우 공단을 지나간다  ↓

 

 

편의점 아이스커피도 마셔가면서  ↓

 

 

이런 언덕은 걸어 올라와야 한다 

혼자는 잔차로 올라올 수 있는데 둘은 전기자전거라도 힘에 부쳐 못 올라온다 

그렀다고 집사람이 잔차를 탈 줄 알고 얼마든지 잔차 타고 올라올수있는데 잔차를 못 탄다 

해서 나만 잔차타고 오르고 기다리면서  ↓

 

 

이제 외곽 공단에서 벗어나 도심 중심새내로  ↓

 

여기가 인천의 3.1 운동 발생지라는 곳인가?  ↓

 

 

좁은 골목길로 ↓

 

 

좌틀하고  ↓

 

 

고가밑으로도  ↓

 

 

계속해서 좁은 도로 따라 이 짝 저쪽 

신호 기다리고 잔차 타는 것도 위험하고 쫌 피곤하고 혼란스럽다  ↓

 

 

시장입구인 것 같고  ↓

 

 

신포 국제시장  ↓

 

 

시장에서부터 또한 차려 깔끄막 오르는데 

잔차로도 못 올라 나는 잔차와 끌바 마눌은 두발로 올라오는데 

마눌 표정이 더위에 지쳐버린다 깔끄막 올라와서 얼래고 달래고 하면서 

모~~~~ 야 하는데 깔끄막 올라오니 자유공원입구이다  그제야 마눌 서서히

기분이 풀린 듯하고  ↓

 

 

자유공원입구다 잔차는 못 들어간단다 

끌바는 괸찬겠지하고 끌바 하면서 맥아더 동상으로 간다  ↓

 

응봉산 전체를 자유공원이라 부르는데

조성연대는 서울의 파고다공원(1897)보다 몇 년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천항 개항 뒤 외국인 거류민단(居留民團)에서 관리 운영하여

당시 시민들은 이를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 불렀고,

그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각국 거류지의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仁川府)로 이관되자

그때부터는 서공원(西公園:일본인들이 이른바 神社를 지어놓은 동공원이 따로 있었음)으로 불렀다.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응봉산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이다.

지난날 이곳에는 인천각·청광각(淸光閣) 등의 건조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없어졌다.

충혼탑을 비롯하여 걱정루(石汀樓)·연오정(然吾亭) 등이 있으며,

학익고인돌[鶴翼支石墓]을 옮겨 보존하고 있다. 

 

 

 

맥아더동상이다  ↓

 

 

그리고 바다는 보이는데 맘에 들지 않는 바다다  ↓

 

 

그리고 공원 중간부는 무슨 공사인지 공사하고 주위가 어수선해 

공원 꼭대기는 올라가는 것 포기하고 바로 서해랑길 따라 저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잔차는 등에 매고 내려간다  ↓

 

 

계단 내려오면 여기가 종료지점이다 종합안내판은 없다  ↓

 

 

종점에는 선린문이 우뚝 버티고 있고 

주위 벽면 쪽에는 삼국지거시기들이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

 

 

자차주차는 지난 코스 때는 이런 주차공간을 못 봤는데 

이번에야 주차공간이 있다는 걸 알았고 무료이기에 편하게 주차했고 

바로 자차회수해서 집으로 귀가하는데 낮시간인데도 엄청난 정체로 고생하면서 귀가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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