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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속의 여유 두발로

외씨버선길 12구간 ㅡ 김삿갓문학길 본문

카테고리 없음

외씨버선길 12구간 ㅡ 김삿갓문학길

조장운 2022. 11. 12. 17:45

황사와 흐린 날씨에 지르네 전망대에서 바라본 옥동천   ↓

 

『 외씨버선길 12경』ㅡ 김삿갓문학길  

 

 

◈언제:2019 /11/2(요일)

소재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코스경: 영월객주(김삿갓문학관)→김삿삿묘역→ 와석1리마을회관→가랭이봉등산로입구→김삿갓 면사무소

◈거리 :13km G.P.S,실거리

◈시간 :(느림속의 여유시간)

교통: 자가용

◈네비: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ㅡ22

◈누구랑 : 마눌과

◈날씨 :  흐림

시야와 조망상태: 황사로인해 좋지않음

 

 

 

 

 

개  념  도 ↓

 

 

교통정보 ↓

 

 

G.P.S.구글위성트랙 ↓

 

 

고도프로필 ↓

 

지난 구간은 둘레길보다는 산행이었다

천고지와 구백 고지 능선들을 넘나드는 그런 마루금 산행

산행을 마치고 차량 회수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기에 너무 피곤해서

집으로 귀가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민박을 하고 담날 집으로 귀가했지만

약 2.3일간 후유증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이제는 회복되어

이번 12구간을 맞이하게 된다

짧은 거리 심한 오름길이 없었기에 정말 편안하게 한나절 버선길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이번 버선길 날짜는 일부러 주말에 잡았다

근처 도드래기재에서 산을 좋아하는 동무들의 가을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가용 회수도 동무들이 지나면서 일부러 들어와 도와주었고

버선길 마치고 주변 백두대간 수목원 주변 서벽에

민박을 얻으려 했지만 주말이라 민박과 펜션이 다 동이나있다

해서 주실령 넘어 오전 약수터 근처에서 민박을 구하고

모임에 참석 반가운 동무들과 대화와 한잔의 술을 마시면서 밤을 보낸다

 

버선길 이야기 (모든사잔 클릭하면 크게 볼수있음)

 

습관처럼 새벽 3시에 기상 4시에 출발한다

이 시간대에는 정말 고속도로가 한가하다 120킬로로 자동으로 맞춰놓고

헨들만 조정하면 된다 참 편안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 계절에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안개다

이 지역에는 유난히 안개가 심하다 안갯속에 여유는 사라지고

눈동자는 정면에서 한시라도 벗어날 수 없다 긴장하면서 무사히 김삿갓 문하관에 도착

모닝커피로 여유를 찾고 준비하고 진행한다 

김삿갓 문하관이다 유료인 것 같은데 새벽 7시에는 당연히 문이 잠겨있다 ↓

 

 

김삿갓은 어떤 인물인가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경기도 양주 출생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화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

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묵었다.

이때 둘째아들 김익균(金翼均)을 낳았다. 또다시 고향을 떠나서 서울·충청도·경상도로 돌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 동안 훈장노릇도 하였다.

다시 전라도·충청도·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 김성수 아들집에서 1년쯤 훈장노릇을 하였다.

충청도 계룡산 밑에서, 찾아온 아들 김익균을 만나 재워놓고 도망하였다가

1년 만에 또 찾아온 그 아들과 경상도 어느 산촌에서 만났으나, 이번에는 심부름을 보내놓고 도망쳤다.

3년 뒤 경상도 진주땅에서 또다시 아들을 만나 귀향을 마음먹었다가

또 변심하여 이번에는 용변을 핑계로 도피하였다.

김병연이 전라도 지역을 유랑하다가 동복(同福: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땅에 이르러 쓰러졌는데,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뒤 김병연은 지리산을 두루 살펴보고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돌아와

1863년(철종 14) 5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뒤에 김익균이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김병연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畫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그 파격적인 양상을 한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망할놈의 마을에선 쉰밥을 주더라/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

내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다(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이 시에서 전통적인 한시의 신성함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

그 양식 파괴 등에서 이러한 파격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문학사에서는 ‘김삿갓’으로 칭해지는 인물이 김병연 외에도 여럿 있었음을 들어

김삿갓의 이러한 복수성은 당시 사회의 몰락한 양반계층의 편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제도의 문란으로 인하여 선비들의 시 창작기술은

이와 같은 절망적 파격과 조롱·야유·기지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다.

그의 시를 묶은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한국문화 대백과사전에서 가져온 글이다~

 

문학관 주위에는 수없이 동상과 시비들이 전시되어있다 이 중 하나를 담아본다  ↓

 

 

대형주차장은 아직 텅 비어있지만 주말이라 관광객이 제법 찾아온다는데 주차는 무료이고 ↓

 

 

11구간 종점이자 12구간 시점인 영월 객주 건물 앞에서 열 똥 한다 ↓

 

 

일주일 전에 이 민박집에서 하루 묵었다 그 앞을 지나서 ↓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 ↓

 

 

우측 도로 따라 진행된다 ↓

 

 

얼마 후 좌측으로 김삿갓 주거지와 묘역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

 

 

그 짝은 바라다보면서 만족한다 그런데 참 잘 꾸며졌다 ↓

 

 

어느 집에서 쉰밥을 주었을까? ↓

 

한산한 도로 따라 상쾌한 아침이슬 머금고 가는 이 길은 분명 힐링의 길일것이다 ↓

 

 

계곡물을 봐라 아마도 이런 계곡을 청정이라 하지 않을까 ↓

 

 

김삿갓계곡은?

김삿갓 묘가 위치하여 유명해진 인근 계곡이다.

김삿갓과 관련된 유적은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경계지대에 분산되어 있는데

남대천 (南大川)을 사이에 두고 북쪽 영월군 하동면 어둔리 선래골 (선락동)에는 집터가 있고,

근처 와석리 노루목에는 묘소가 있다.

그리고 냇물 건너 단양군 영춘면 접경에는 기념시비가 세워졌다.

최근 김삿갓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을 찾는 등산객, 답사 여행객이 증가하여 대야리 -

인근 마대산(해발1,052m, 강원도,충북, 경북 3도의 접경을 이루는 산) -

김삿갓생가터 - 김삿갓묘역을 연결하는 등산로가 개발되고 있으며,

곰봉 (곰의 모양을 한 봉우리)도 탐방이 잦아지고 있다.

와석리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조촐한 오지 마을로서 옛 시골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김삿갓 계곡은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지녔다.

관광지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오염이 안되고 보존이 잘 되어 청정지대임을 자랑한다.

인근 내리계곡의 크낙새와 법흥사 적별보궁 오르는 길의 딱따구리,

그외 동강과 서강이 기암을 돌아 흐르는 곳에 사는 수달,

수리부엉이, 비오리, 검독수리, 작은소쩍새, 올빼미, 황조롱이, 오리떼 등은

이 지역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생태박물관임을 입증한다.

영월군은 이 계곡과 내리계곡 등 인근의 계곡을 번갈아가며 휴식년제를 취하고 있으므로 확인 후 출발해야 한다.

 

김삿갓 계곡이란다 ↓

 

 

12길인 김삿갓문학길은

외씨버선길 중에서도 가장 찾는 이가 많은 길 중 하나이단다

중간중간 마을 뒷산을 오르는 정도의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평탄한 마을 길과 계곡 옆 숲길로 이루어져 있고,

박물관의 고을인 영월의 길답게 중간중간 들러볼 수 있는 박물관들도 산재해있어

가족과 함께 찾는 길벗이 많은 길이기도 하단다
김삿갓문학길의 초반 길은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이자

사회에 대한 비판·풍자적 내용을 이야기한 민중 시인으로서

유명한 김삿갓(난고 김병연)이 실제로 걸어 다녔던 옛길을 복원하여

그의 시속에 담긴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단다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다는 김삿갓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신선의 세상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워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

 

 

산 넘어 산 그래서 이런 형상을 첩첩산중이라 하는가 보다 ↓

 

 

그런데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도로인데 계곡 건너 저 안전 테크는 뭐지?

알고 보니 전에는 그 길로 진행했는가 보더라 지금은 도로 따라 진행을 유도하는데

이유가 있겠지? ↓

 

 

찌든 내맴을 순화시켜주는 것 같다 ↓

 

 

민화박물관이란다 산행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곰봉 들. 날머리이기도 할 텐데 ↓

 

 

저능선은 처녀봉에서 마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같은데 ↓

 

 

이제는 파란 하늘이 열려있는 것 같은데 뿌연 황사는 떠날 줄을 모른다 ↓

 

 

이제는 도로에서 벗어나 마을길로 진행하는데 ↓

 

 

한산한 마을길도 그제 그제 좋기만 하다 ↓

 

 

자가용 운전하시는님 시원한 막 초 한잔 또한 잔 그러다가 낭패입니다 그려 ↓   

 

 

 

늦가을길의 풍경 외씨버선길 ↓

 

 

가을 하늘 가끔은 뱅기지날때 하얀선이 생기는 거 궁금했는데

뱅기가 지날 때 받는 충격과 압력으로 다발적으로 물분자가 되어 어쩌고 저쩌고 한답니다 ↓

 

 

이제는 산속으로 드갈태세인데 ↓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마루금을 조망해본다 ↓

 

 

그리고 까칠한 산길을 오르는데 ↓

 

 

우측으로는 절벽과 깊은 계곡과 아찔함을 ↓

 

 

산 경사면에서 내려와 다시 도로 건너 이제는 계곡을 좌측으로 두고 사면 길로 진행하는데 ↓

 

 

깊어가는 가을색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는구나 ↓

 

 

여기서 이정표는 좌측으로 안내하는데

좌측은 막혀있고 진행 리본은 우측 경사면 오름길로 가라 한다 ↓

 

 

짧은 거리지만 오름길 경사가 쏠쏠했고 ↓

 

 

다시 가을색과 마루금을 조망해보는데 ↓

 

 

이제는 산길에서 마을로 내려가고 ↓

 

 

다시 도로와 만난다 ↓

 

 

도로에서 조금 걸으면 다시 우측 사면 길로 진행되는데 진행하기 전에 쉼터가 있어 잠깐 쉬었다가 ↓

 

 

쉼터에서 잠시 쉬고 다시 진행한다 ↓

 

 

역시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가는데

김삿갓 계곡은 이지점에서 끝이 나고 옥동 천하고 합류한다 ↓

 

 

테크를 지나 ↓

 

 

걸어온 계곡을 뒤돌아보고 ↓

 

 

첫 인증 지점이 나온다 원래는 인증하려면 이 자리에서 얼굴이 들어가야 하나

우리야 인증이 뭐가 중요할까 그냥 사진으로만 남긴다 ↓

 

 

곡 동교다 ↓

 

 

곡동교에서 다리 건너 마을 입구에 또다시 인증 장소가 나오고  ↓

 

와석 1리 마을길로 진행된다 ↓

 

 

진행하면서 우측 풍경을 담아본다 ↓

 

 

역시 가을 풍경이라 넘넘 좋다 보는힐링 최고 ↓

 

 

마을이름도 정말 정감이 간다 ↓

 

 

매기 못이라는데 이미 볼거리는 없다 관리가 안된 탓이겠지 ↓

 

 

와석 마을에서 빠져나오니 색 바랜 산행 안내도와 인증표지판이 있고 ↓

 

 

이제는 다시 숲 속으로 드간다 ↓

 

 

초입은 푹신푹신 발바닥에 평온이 찾아오지만 ↓

 

 

더 깊이 들어오니 좌측으로는 사면과 암석으로 우측으로는 절벽이 긴장감을 주고 ↓

 

 

이 길은 옛길을 복원했다고 한다 ↓

 

 

곧이어 가랭이봉 입구란다

여기서 오름길이 벅차다면 우회길로 우회하면 될 것이다 ↓

 

 

이정표도 있다 진행하면서 자주 볼 수 있다 ↓

 

 

제법 오름길이 있더라  ↓

 

 

오르면서 뒤돌아본다 ↓

 

 

꾸역꾸역 올라오니 능선과 만나고 약 10여 미터 앞에는 가랭이봉 정상에 가는 갈림길 있다  ↓

 

 

가랭이봉에 오를 수는 있지만 조망도 없고 아무런 표시도 없다 하여 우리는 버선길로 계속 진행한다 ↓

 

 

지르네 전망대다 ↓

 

 

가지 몇 개만 잘라놓았어도 기가 막힌 조망대였을껀데 아쉽다

바로 밑에는 수직 절벽이라 사진 찍다 떨어지면 바로 즉사할 텐데 마눌 소리 지르며 조심하라 한다 ↓

 

 

또다시 전망대가 나오는데 ↓

 

 

가랭이봉이 조망된다 우리가 아마도 8부 능선까지 오르다 내려온 것 같은데 ↓

 

 

그리고 김삿갓면 일대가 평화롭게 조망된다 ↓

 

 

또 다른 조망대에서 가을산을 조망하지만 하늘은 새벽보다 더 미세먼지와 황사가 흐려놓고 있다 ↓ 

 

 

이제는 김삿갓면에 입성한다 ↓

 

 

내려와서 이길로 약 1킬로만 가면 ↓

 

 

특이한 면사무소 표시목이 눈에 들어와 이놈을 담아본다 ↓

 

 

 12구간 종착지 김삿갓 면사무소다 근디 지붕도 삿갓모양이다 ↓

 

 

12구간 마지막 인증샷이다

근디 모양이 엇비슷하고 특이한 점도 없고 마냥 표시판을 찍기에도 이제는 거시기 하는데

그래도 인증헐려면 찍어야 한다 ↓

 

 

이표지판도 찍어야 한다 ↓

 

 

한나절 버선길 나들이를 마치고

산동무들이 택배 해주려고 기다리는 보리밥집에서 산동 무들과 함께 점심 먹고 ↓ 

   

 

두루님 차량으로 다시 문학관으로 되돌아와

기념으로 한방 박아주고 까만 안경 김정은이 아닙니다 오해 마시고

차량을 회수해서 산동 무들은 바로 도래기재로 가서 집맹글고 여러 산동무들과 해후하고

나는 집사람 쉴 곳을 찾아 헤매다 주실령 넘어 오전약수 관광단지에 민박하나 구해 집사람 쉬게 하고

나는 바로 도래기재로 되돌아가 산동무들과 합류한다  ↓

 

 

도래기재 홀산제 장소다 아즉은 절반밖에 안 온 것 같다 ↓

 

 

참 반가운 얼굴들이다  ↓

 

 

집들도 차곡차곡 지어지고 ↓

 

 

반가운 홀산동호회의 산동무들이다 ↓

 

 

이렇게 밤새도록 야그와 함께 부어라 마셔라 했다나 어쩠다나 암튼 ~~~! ↓

 

 이렇게 깊어가는 가을밤 산동무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미안해서 몰래 빠져나와 집사람이 쉬고있는곳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담날 집으로 귀가하게된다

울 부부를 택배해준 산동무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리고 이제 외씨버선길 마지막 구간만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구간이다고

23키로 장거리로 맹글었나 암튼 또다시 다리 물집들이 요동칠것 같은데 걱정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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